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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책정리] 본체론- 4. 송원명청시대의 본체론
이태형 at 2009-11-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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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體論 (문제로 보는 중국철학;방입천;이기훈황지원:예문서원의 내용을 정리)

 

4. 宋元明靑 시대의 본체론

◈장재

장재(1020~1077)는 북송北宋 시기의 유물론 철학자이다. 그의 자는 자후子厚이며, 봉상鳳翔 미현(지금의 )의 횡거진橫遽鎭 출신이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횡거 선생이라 불렀다. 그는 관중에서 강학을 하였으므로 그의 학파를 ‘관학’이라 칭한다. 그의 철학 저작 가운데 대표작은 단연『정몽』이다.

장재는 기일원론자이다. 그는 시계 만물이 생성하는 전체적인 도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기가 모이면 일월성신이나 산하대지, 초목과 조수와 같은 만물을 형성하고, 기가 흩어지면 바로 ‘태허’이다. 다시말해 세계의 어떠한 존재라도 그 바탕은 바로 기라는 것이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모양을 드러낸 것은 모두 유有이다. 모든 유는 상象이 있다. 모든 상은 다 기이다. 태허는 기가 없을 수 없고, 기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은 흩어져 태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형체를 지녀 모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며, 존재에는 모두 현상이 있고, 모든 현상은 또한 기라는 말이다. 기에는 두 가지 기본적 존재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태허’와‘흩어짐’이다. 장재는 사람을 예로 들어 “모인 것 역시 나의 몸이고, 흩어진 것 역시 나의 몸이다”라고 말하였다. 즉 사람의 삶과 죽음은 바로 기의 흩어지고 모임, 즉 ‘취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태허’가 기임을 강조하였다.

 

태허는 형체가 없는 것으로 기의 본체이다. 그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의 잠시적인 형태일 뿐이다.

 

본체란 본연의 사애를 일컫는다. ‘객형’은‘본체’는 상대되는 것으로, 잠시적인 형태를 가리킨다. 태허는 기의 본래적인 상태이다. 즉 기가 아직 구체적인 사물을 형성하지 않은 상태이다. 기의 취산은 변화의 잠시적인 형태이다. 태허는 기의 일종 상태이다. 장재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한대 학자들이 허와 기氣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에 대해 허가 기에 비해 더욱 근본적이라는 관념론을 주장했고, 한편으로는 불교와 도교의 허무주의 사상을 반대하였다. 이에 그는 “태허가 기임을 안다면 무無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허와 기르르 통일시켜 ‘무가 유를 생한다’는 학설을 비판하였고, 유와 무는 기에서 통일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당시 중요한 이론적 공현이다. 그런데 태허의 기가 응결하여 만물이 되고 만물이 흩어져 태극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장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이른바 변이란 모이고 흩어지고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표현한 것이지, 반딧불이나 참새가 변하는 것처럼 전신과 후신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딧불이나 참새가 변한다’는 말은 풀이 썩어서 반딧불이 되고 참새가 물에 뛰어들어 개구리가 된다는 종류의 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장재는 태허와 만물의 전화는 결코 이와 같지 않고, 태허에서 직접 실현되며 모이고 흩어짐으로 직접 전화된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각종 사물의 형태가 서로 전화되는 것을 알리지 못했고, 물질 운동 형식의 다양성과 그 전화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장재 기일원론의 중요한 특색은 전체와 과정을 통일시킨 것이다. 그는 기의 전체를 일컬어 ‘태화’라 하였고, 태화는 또한 변화의 과정이라 하였다.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살펴보자.

 

태화는 이른바 도이다. 그 속에는 뜨고 가라앉음, 오르고 내림, 움직임과 멈춤이 서로 감응하는 성질이 있다. 이것에서 두 기운(음양)이 화합하여 섞이고, 이기고 지며, 굽히고 펴는 작용을 생성하기 시작한다.

 

장재는 또 “기화에서‘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말하였다. 이는 곧 태화.도.기화 이 셋은 분리할 수 없으며, 도는 기의 운동 변화의 과정, 즉 기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태화는 기화의 총체적 과정이다. 다시 말해 기화는 기의 전체이다. 이렇게 전체의 관점과 과정의 관점이 통일되는 것은 깊이 있는 변증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장재는 기가 물질의 원시적 상태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것은 물질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기는 물질에 상당하고 따라서 리학과 철학의 물질 개념이다. 그는 물질의 실체인 ‘기’로 세계 만물의 생성 근원과 세계의 통일성을 설명하였다. 이ㅏ것은 소박한 유물론적 자연관이다. 기에 취산이 있으되 생성과 소멸이 없다는 그의 관점은 물질 불멸 관념의 싹을 담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과학사와 철학사에 탁월한 이론적 공헌을 한 것이다.

 

◈이정

이정이란 정호와 정이 두 형제는 가리키는 말이다. 정호는 1032년에 태어나 1085년에 죽었으며, 후대인들이 그를 정명도라 칭하였다. 정이는 1033년에 태어나 1107년에 죽었으며, 후대인들이 그를 정이천이라 칭하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정이라 일컫는다. 그들은 오랫동안 낙양에서 강학을 평쳤기 때문에 그들의 학파나 학문을‘낙학’이라 하며, 또‘리理’를 최고 범주로 삼았기 때문에 ‘리학’이라고도 한다.

 

‘천天이란 리이다’와‘리는 근본이다’라는 명제

 

이정은 세계의 본원이‘리’라고 여겼다. 리는 또 ‘도’혹은‘천리’라고도 일컬어진다. 이른바 ‘천天’이라는 말에는 최고의 실체라는 듯이 들어 있다. 이에 이정은 “천이란 리이다”라고 말하여 ‘리’가 최고의 실체라고 생각하였다. 정호와 정이는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학문이 비록 다른 곳에서 받아들인 것도 있으나, ‘천리’라는 이 두 글자만은 우리가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과 그렇게 이루지 않으려는데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천리이다.

 

곧 천리는 이정 절학 체계의 최고 범주이다. ‘리’와‘천리’의 관념은 선진 시기의 문헌에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주역』「계사상」에서는 “쉽고 간편함으로써 천하의 리를 체득한다”고 하였고, 『맹자』「고자상」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그렇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리이며 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보편적인 의미에서 리를 말한 것이다. 『장자』「추수」에서는 “도를 아는 자는 반드시 리에 통한다”고 하여 도와 리를 함께 말하였고, 「양생주」에서는 소 잡는 백정이 자신의 소 잡는 기술을 임금에게 소개하여 “방금 저는 신묘한 정신으로 소를 본 적이지 눈으로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관의 감각과 지각을 멈추고 신묘한 정신으로 행하였습니다. 천리에 의뢰하여 소의 뼈와 살 사이의 틈이나 관절의 구멍으로 칼을 넣어 부릴 뿐 억지로 소를 잡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그러한 것을 따를 뿐 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천리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동물의 자연스런 생리 구조를 가리킨 말이다. 1973년 중국의 장사 마왕퇴의 한대 묘지에서 비단에 씌어진 여러책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경법』「사도」에는 “도를 잡고 리를 따르면 반드시 본래의 시작을 따라 하늘의 기준에 순종하게 되며, 죄를 금하고 벌한다면 반드시 천리에에 드러맞게 된다”고 하였다. 『예기』「악기」에는 ‘성性’혹은‘선천적인 善性’을 느끼면서 움직이는 것은 성의 욕망이다. 사물을 안 연후에야 좋아함과 싫어함이 형성된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마음 안에서 절도가 없고 또 앎이 바깥의 유혹을 받아 몸을 돌이킬 수 없으면 천리가 사라진다”고 말하였다. 이정의 ‘천리’에다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다. ‘리’를 시계의 본원으로 추상해 내어 자기 철학 체계의 최고 범주로 삼은 것이다.

이정이 천리가 세계의 본체라고 학설을 제시한 데는, 당시 각 학파와 철학의 기본 문제에서 분기되고 논쟁되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기를 만물의 본체로 삼는 장재의 유물론적 사상을 반박하고, “리가 있으면 기가 있다”,“무릇 사물의 흩어짐은 기가 마침내 다한 것으로 본원으로 돌아가는 이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정은 리가 있어야 비로소 기가 있으며, 기에는 생성도 있고 소멸도 있기에 만물의 영원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것은 기보다 리를 더욱 근본적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또한 소옹의 상수 학설이 만족하지 못하고,‘상수’의 계열로 우주 만물이 어떻게 생성 변화하는지 추연하는 것에 머무를 수 없으며 반드시 상수의 본원 혹은 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리가 있은 후에 상이 있고 상이 있은 후에 수가 있다.『주역』은 상에 근거하여 리를 밝힌 것이며 상에서부터 수를 아는 것이다. 이것을 알았다면 상수는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리가 상과 수의 근워이자 조화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정은 천하 만물의 근운과 만물의 통일체를 리로 보았다.

 

리라는 것은 알맹이이자 근본이다.

 

리가 아는 것이 없으니, 오직 리만이 실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일체라고 일컫는 것은 모두 리가 있기 때문이며, 만물은 다만 여기에서 온 것일 따름이다.

 

통틀어 볼 때 근본적으로 “천하는 다만 하나의 리일 따름이며”리만이 세계 만물의 유일한 진실 존재의 본체이다. 이 리는 영원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천리라는 것은 하나의 도리가 더욱 깊이 궁구되는 것일 분이다. 요임금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고 걸임금 때문에 없어지지도 않는다. 사람이 그것을 얻은 것이기에 훌륭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더 할 수 없고, 곤궁하게 산다 해서 덜어 낼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존재하고 사라지고 더해지고 덜어지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이 말한 ‘리’에는 두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 이것은 자연의 법칙 혹은 질서에 상당한다. 둘째, 모든 사물을 초월한 최고 원칙 혹은 원리를 가리킨다. 후자는 전자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이정이 말하는 리의 주된 함의이다. 정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하의 사물은 모두 리로써 비춰볼 수 있으니,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그 법칙이 있고, 하나의 사물이 있으면 모름지기 하나의 리가 있다.

 

리란 사물의 소이연, 즉 필연성이며 법칙성이다. 이정은 만물을 통일하는 리가 세계 만물의 소이연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 한다. 도는 음과 양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도이다.

 

다시 말해 도란 곧 리이며, 음양은 곧 기이다. 즉 기의 소이연이 바로 도이며 리이다.

 

음과 양을 떠나서는 도가 없다. 그러므로 음이 되고 양이 되는 것이 도이다. 음양은 기이다. 기는 형이하자이고 도는 형이상자이다. 형이상자는 은미하다.

 

즉 기는 물질 존재이며 기의 소이연인 도는 물질 존재의 위에 독립적으로 존재한 실체라는 말이다. 이것은 사물의 보편적 법칙을 사물 가운데에서 추상한 것이며,나아가 사물과 분리하여 대립시킨 것이다. 따라서 리는 사물의 바깥에 독립해 있는 추상적 관념물인데, 이정은 이 추상적 관념을 세계의 본체로 간주한 것이다. 이것은 정형적인 객관적 관념론의 본체론이다.

이정이 말한 리의 실제 내용은 사실 봉건 도덕의 법칙이다.정호는 “부자와 군신이 천하의 정해진 리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곧 부자군신의 봉건 등급 관계의 법칙이 리의 근본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군권과 부권을 사람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만고불변의 천리로 간주하여 봉건적 등급 통치를 위해 철학적으로 논증을 펼친 것이다. 동시에 사물의 객관 법칙과 봉건 도덕 기준을 뒤섞어 자연계를 도덕화하고 또 그 모습을 왜곡시켰으며, 자연계와 인류 사회를 봉건 도덕 법칙의 지배를 받는 통일적인 정체로 보았다. 이 역시 리를 최고 범주로 삼은 우주모식이다.

 

이정 사상의 동이점

 

정호와 정이 두 사람의 철학 사상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 구분점은 ‘리理’와‘심心’의 관계를 논한 곳에서 주로 나타난다. 정이는 ‘리理’‘명命’‘성性’‘심心’이 서로 통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하늘에서는 명이라 하고 사람에게서는 성이라 하니, 그 주된 것을 논하면 심이되고 그 실질은 다만 하나의 도이다”라고 말하였다. 즉 사람의 몸에 있는 리는 심이기에, 사람에게서 심과 리는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이가 유가와 불교를 구별할 때는 “성인은 하늘에 근본하고, 석가는 마음에 근본한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유가의 성인은 모두가 천(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일체가 마음에서 나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천(리)과 마음을 대립시켜 천(리)을 만물의 본원으로 삼은 것으로, 천리는 최고의 철학 범주이다.

정호는 이와 다르다. 그는 “다만 마음이 곧 하늘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을 곧 하늘이며, 양자가 대립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서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정의 이러한 엇갈린 표현은 정이의 사상이 객관적 관념론인데 비해 정호는 주관적 관념론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이의 사상은 대부분 주의에 의해 계승되었고, 정호의 사상은 육구연과 왕수인王守仁에 의해 계승되었다.

 

 

 

 

◈주희

◈육구연

◈왕수인

◈왕정상

◈황종희

◈방이지

◈왕부지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자가 이농而農이고 호가 강재薑齎이다. 그는 만년에 형양衡陽의 석선산石船山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후인들은 그를 왕선산이라 불렀다. 그는 `앉아서도 천고의 지혜를 모으는´큰 도량을 가졌고, 넓고도 깊은 학문적 소양을 지녔다. 그는 오랫동안 은둔하면서 40여 년간을 저술에 몰두하였으므로 저작이 매우 풍부하여 모두 100여종 400여 권에 달한다. 한 마디로 그의 학술적 성취는 휘황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중국 명말청초의 유물론 사상에 일면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참으로 중국 고대 유물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기란 리가 의탁하는 것이다

 

왕부지는 죽지 전에 스스로 묘비명을 적어 자기 학술의 종지가 장재의 정학을 희구하는 것´이었음을 밝혔다. 즉 장재의 유물론 학설을 견지하고 내세웠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장재의 숭앙하여 그의 기일원론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음양의 二氣는 태허에 충만하여 있는데, 이것 외에는 다른 사물이 없으며 또한 틈도 없다. 하늘의 형성이나 땅의 형태는 모두 기氣에 의해 포괄된것이다.

 

다시 말해 기는 전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보편성과 무한성을 지니고 있어 만물은 기로 통일되어 있다는 말이다.

왕부지는 유물론적으로 리와 기의 관계를 해석하였으며, 정주학파의 `리선기후理先氣後´의 관점을 부정하였다. 이에 그는 "리란 사물의 원래 그러한 바이며, 일(事)의 소이연所以然이다"라고 말하여, 리는 자연계에 나타나는 질서이며 객관 사물의 고유한 법칙이라 하였다. 그는 또 "기란 리가 의탁하는 바이다", "기의 바깥에 허공에 의탁한 고립된 리란 없다"라고 말하여, 리는 기에 의존하여 존재하며 기를 떠나 존재하는 독립된리가 없다고 하였다. 리와 기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존재하는가의 논란에 대하여 그는 리와 기가 동시적인 것이며 시간적으로 선후의 구별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천하는 오직 기이다.

 

`천하는 오직 기器이다´라는 명제의 제시는 왕부지의 자연관에서 독특한 경해이다. "형이상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 한다" 라는 말은 사물과 법칙의 상호 관계에 관한『주역』의 유명한 명제이다. 후에 각 철학자들은 이 명제를 달리 해석하였다. 장재는 형이상의 도가 기氣이고 형이하의 기器는 개별 사물이라고 보았다. 또 정이와 주희는 형이상의 도는 리理이며, 형이하의 기器는 기氣와 그것으로 구성된 물체라고 여겼다. 왕부지는 도기道器에 대한 정주의 정의를 취하였으나, 도기 관계에 관한 정주의 관점을 바꾸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하는 오직 기일 따름이다. 도란 기의 도이다. 그러나 기를 도의 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도가 없다면 그 기도 없다고 사람들은 쉽사리 말할 수 있다. 비록 그렇지만 참으로 그 기가 있다면 어찌 도가 없을 것을 근심하겠는가?‥‥‥ 그 기가 없다면 그 도 역시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원래 그것은 진실로 그러한 것이다.

 

여기에서 도라는 것은 리를 가리켜 말한 것으로 곧 사물의 법칙이고, 기라는 것은 구체적인 사물이다. 도는 일반이자 보편이고, 기는 개별이자 특수이다. 이 말의 뜻은 세계의 모든 사물은 구체적인 존재인데 일반법칙은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사물을 일반 법칙의 구체적인 사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도가 없다면 그 기도 없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기가 있어야 그 도가 있는것인데 이를 말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왕부지는 물질과 법칙, 개별과 일반이라는 변증적 관계를 무게 있게 드러내었다. 법칙은 물질의 법칙이지 법칙에 의한 생겨난 물질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반은 개별의 일반이지 일반에 의해 생겨난 개별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물질과 개별은 실체이고, 법칙과 일반은 이와 달리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물질과 개별이라는 이 실체 가운데 존재하면서 실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디 때문이다. 이러하면 법칙과 일반이 사물이 있기 이전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오류이다. 왕부지는 `그 기가 없다면 그 도 역시 없다´와 `그 도가 없다면 그 기 역시 없다´는 두 관점을 대립시켜 유물론과 관념론의 근본적인 분기점을 표현하였다. 이 역시`도(理)´를 물질 세계의 앞에 있다고 상정하여 도기道器관계를 전도시켜버린 정주학파를 비판한 것이었다.

 

무無와 유有

 

왕부지는 정주학파가 전도시켜 버린 도기 관계를 바로잡는 동시에 이른바 `형체가 없이 앞서 존재하는´본체가 근본적으로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형이상´이란 형체가 없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형체가 이미 존재한다면 형체가 있은 이후에 형이상이란 것이 있다. 형체가 없이 앞서 존재하는 것이란 고금과 온갖 변화를 통털어 구하고 하늘과 땅을 궁구하며 사람과 사물을 궁구해 보아도 있은 적이 없었다.‥‥‥ 이를 버리고 기에 앞서 있다는 존재하지도 않은 사실에서, 구하는 것은 고금과 온갖 변화를 톨털어 하늘과 땅을 궁구하며 사람과 사물을 궁구해 보아도 이름조차 붙일 수 없었는데, 하믈며 그것을 싱체라고 하는 것에서랴!

 

이른바 형이상이란 결코 무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기가 있은 후 형체가 있고, 형체가 있은 후 형이상이든 형이라든 있다. 기가 없다면 형체도 없고 형체가 없다면 형이상이든 형이라든 없다. 기에 앞서 형체가 없이 존재하는 본체는 철저한 허구이다. 노자와 불교, 정주학파는 모두 물질 세계를 너머, 또 물질 세계에 앞서 이러한 형체가 없이 존재하는 정신적 본체를 설정하였다. 왕부지는 바로 이러한 여러 관념론적 본체론이 지닌 사상의 비밀을 폭로하였다. 그는 `천하는 오직 기이다´라는 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형체가 없이 앞서 존재하였다´는 본체론을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숭수한 `무´의 존재도 부정하였다.

 

무를 말하는 자는 유를 휩쓸어 없애려는 것이다. 유를 말하는 자는 무에 상대하여 유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천하에 과련 어느 누가 무를 말할 수 있겠는가? 거북이에게 털이 없다는 것은 개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지 거북이를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니다. 토끼에게 뿔이 없다는 것은 사슴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지 토끼를 기분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말한 것이 반드시 상대되는 것을 세운 다음에야 그 말이 확정 된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자에게 `무´를 앞서 세워 놓고 상하와 사방을 통틀고 고금의 존망을 두루 헤아려 널리 구해보게 한다 해도 그는 궁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무´라는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 사람들은 `유´를 부정하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북이에게 털이 없다는 것은 개에게 털이 있다는 말에 근거하며, 토끼에게 뿔이 없다는 것은 사슴에게 뿔이 있다는 것에 근거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털이 있거나 뿔을 가진 동물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 털과 뿔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순수한 무는 시공時空을 톨털어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왕부지는 무가 유에 상대하여 이야기 된 것이며, 비교라는 것을 거쳐 제시된 부정사不定詞라 하였다. 따라서 그는 무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며 더욱이 세계 만물의 본체는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이 역시 중국 철학사에서 무가 유를 생한다는 관념론적 본체론에 대한 비판이였다. 그는 순수한 무의 존재를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물론적으로 `체體´와 `용用´의 관계를 해석하였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객관 세계의 실존성을 증명하였다.

 

천하의 용(작용 혹은 현상)은 모두 유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용을 따라 그 체가 있음을 아는데,여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용에는 공효功效가 있으며, 체에는 성정性情 있다. 체와 용이 서로 존재하려면 실實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천하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모두가 따라야 할 도리이다.

 

생성과 소멸의 부정

 

기의 취산.변화와 사물의 생성. 소멸에 대한 왕부지의 논술 줄에는 물질 불멸의 사상에 대한 맹아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허 가운데는 아직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기가 존재하는데, 이 기는 자족自足하는 것이다. 기는 모이고 흩어지는 변화를 계속하지만 그 본래의 상태는 덜거나 더해지지 않는다.

 

기가 흩어져 태허로 돌아간 것은 다시 음양이 상합하는 본체가 된 것이지 소멸한 것이 아니다. 모여서 만물을 이룬 것은 음양의 기가 운동하는 정상의 법칙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허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器에는 이루어짐고 허물어짐이 있지만 형상할 수 없는 것이 기 속에 들어 있어 작용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허물어질 수도 없다. 그릇은 낡지만 도는 멈춘 적이 없다.

 

구체적인 사물(器)에는 형성고 소멸이라는 것이 있지만 형상으로 나타낼 수 없는 음과 양의 기氣는 구체적인 사물 속에서 작용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이 기는 구체적인 작용을 일으키면서도 구체적인 사물처럼 형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음양 이기의 변화는 끊임없이 계속되면서도 기에 증감增減이 없는 것이다. 왕부지는 이를 총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生이라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사死란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음과 양의 자연스러운 리이다.

 

이것은 물질이 불변하며 또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는 질량불변의 법칙에 대한 소박한 정리이자 표현이다. 왕부지보다 100년 후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제Lavoisier(1743~1794)는 실험으로 이를 증명하였다. 왕부지의 유물론적 본체론은 송명 리학뿐만 아니라 전체 중국 고대철학의 본체론에 대한 비판적 결산이었다. 또 그것은 본체론의 발전이 종결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면서, 중국 고대 본체론의 학설에서 유물론적 관점이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