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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氣- 2 前人論要: 2. 張介賓《類經附翼․大補論》
이태형 at 2009-11-19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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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張介賓《類經附翼․大補論》 


 

 

『 大 寶 論 』


사람이 되어 醫를 알지 않을 수 없으니 생명이 귀중하게 됨이다. 命이 연계된 것은 오직 陰陽이니 陰陽을 알지 못하고 어찌 醫理를 알겠는가. 이에 陰陽을 論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陰陽의 體는 가로되 乾과 坤이고 陰陽의 用은 水와 火이고 陰陽의 化는 形과 氣이다. 生殺로써 말하면 陽은 生을 主하고 陰은 殺을 主하고 寒熱로써 말하면 熱은 陽이고 寒은 陰이 된다. 만약 그 生化의 機로써 말하면 陽이 먼저고 陰이 뒤이니 陽이 베풀고 陰이 이를 받는다. 先天에 氣로 인하여 形을 化하니 陽이 陰을 生하고 後天에는 形으로 인하여 氣가 化하니 陰이 陽을 생한다. 形은 즉 精이고 精은 즉 水이다. 神은 즉 氣이고 氣는 즉 火이다. 陰陽의 氣는 가장 치우치지 않아야 하니 치우치지 않으면 氣가 和하고 物을 失하는데 치우치면 氣가 乖하고 物이 殺하게 된다. 經에 이르기를 “陰平陽秘 精神乃治 陰陽離決 精氣乃絶”이라 했는데 이는 先王이 백성의 夭厄를 불쌍히 여겨 인하여 醫道를 밝힌것이니 萬世에 垂惠하는 자는 사람을 가리침에 있어 陰陽을 살펴 生氣를 補할 따름이다. 고로 陰陽의 理에 대하여 內徑에서 오직 사람의 불명함을 두려워 하여 간절하고 진실하게 다시 4번이나 말을 했으니 어찌 후학이 능히 밝히지 않으리요 나는 청컨데 먼저 二를 말하고 뒤에 그 一을 말하기로 하겠다. 무릇 二라는 것은 陰이고 後天의 形이다. 一이라는 것은 陽이고 先天의 氣이다. 神은 氣로 말미암아 化하고 氣는 天에 根本하니 내몸을 발생하게 하는 것은 즉 眞陽의 氣이다. 形은 精으로써 이루어 지고 精은 氣에서 生하니 내몸을 성립시키는 것은 즉 眞陰의 氣이다. <上古天眞論>에 “女子二七而後天癸至 男子二八以後天癸至”라 하였는데 만약 陰生이 뒤에 있지 아니하면 陰成이 어렵지 않겠는가. 또 <陰陽應象大論>에 “人年四十而陰氣自半也”라고 했는데 만약 陰衰가 앞에 있지아니하면 陰凋가 쉽겠는가. 이른바 陰이라는 것은 즉 나의 精으로 나의 形을 이루는 것이다. 무릇 形이 없으면 患이 없고 形이 있으면 반드시 毁가 있게 되는 故로 사람이 태어나 완전히 盛한 햇수는 오직 16세 이후에서 40의 外에 이르러 前後 이십여년에 그치고 形體가 점점 衰하여지니 이는 진실로 陰虛의 象이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陽道實 陰道虛”라 이른 것이 可하다 아니할 수 없다. 고로 丹溪가 日月의 盈虧를 인용하여 “陽常有餘 陰常不足”論으로 삼아서 補陰과 大補 등으로 丸을 세우고 黃柏, 知母로써 神丹을 삼아 집마다 내려오며 사용하니 그 害가 어찌 심하겠는가? 달리 天癸가 이르지 않음이 본래 氣에서 말미암고 陰氣가 自半하는 것도 또한 氣에서 말미암음을 알지 못하니 이 形이 비록 陰에 있지만 氣는 즉 因하여 陰을 따른다. 이는 死生의 機를 판별하지 아니할 수 없음이라. 내가 먼저 그 둘을 말하는 바의 것은 즉 이것이다. 그 하나는 어떠한 것을 이르는 것인가. 하나는 즉 陽이고 陽은 뜻이 광범위하다.

 


‥‥ 무릇 陰은 陽으로써 主를 삼고 造化의 原과 관련되는 바이요 性命의 根本이 되는 것은 오직 이것일 따름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짐짓 그 가장 要點을 들어 보면 세 가지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形氣의 辨이고 둘째는 寒熱의 辨을 말할 수 있고 세 번째는 水火의 辨이다. 무릇 形氣는 “陽이 氣로 化하고 陰이 形을 이룬다.” 이는 形이 본래 陰에 속하고 무릇 전체 몸의 따뜻함은 陽氣이다. 일생의 活動은 陽氣이고 五官五藏의 神明不測은 陽氣이다. 이미 죽음에 미쳐서는 몸이 얼음과 같이 차가와지고 靈覺이 다하여 소멸되며 形은 굳어지고 氣는 없어지니 이로써 陽脫이 앞에 있고 陰虧가 뒤에 있다. 이것을形氣陰陽의 辨이라 하니 陰이 陽보다 많지 아니한가?

둘째는 寒熱이라 말했으니 熱은 陽이되고 寒은 陰이 된다. 봄 여름의 따뜻함은 陽이고 가을겨울의 차가움은 陰이 된다. 長夏의 더위에 당하여서는 온 나라가 火爐와 같다. 이 때에 草木 昆蟲이 모두 煎灸를 괴로워하나 더욱 熱한 즉 더욱 繁盛하고 熱이 없으면 盛하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風霜에 이르면 넘어지고 시들고 들에 두루 미치게 된다. 이는 熱은 능히 物을 生하고 熱이 過하게 되면 오직 炳이되고 寒은 生意가 없고 寒이 과하게 되면 伐盡하게 된다. 그러한즉 熱은 傷함이 없으나 寒은 가히 두려워 할 것이다. 이는 寒熱陰陽의 辨이라. 寒이 熱보다 강하다 아니 하겠는가?

水火는 水는 陰이고 火는 陽이다. 造化의 權은 완전히 水火에 있는데 水火의 象은 4가지가 있은 즉 ‘日은 太陽이고 火는 少陽이고 水는 太陰이고 月은 少陰이다 이 四象의 眞形은 사람이 達하지 못하는 바이다.

내가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醫를 괴롭게 하기를 좋아하는 客을 만났는데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다르다 하여 말하되 月은 본래 太陰이고 火는 어찌 霄穰인가. 옛날에 이러한 說이 없는데 어디에 根據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른 바가 있습니까? 가로되 陽은 外를 主하고 陰은 內를 主하니 이는 陰陽의 定位이다. 陽 中에 太陰은 없고 陰 中에 太陽은 없다. 이는 陰陽의 專主이다.

陽이 하늘에서 따뜻하게 비추니 이는 陽 中의 陽이니 太陽이 아니겠는가. 月은 天에 있어서 陽 中의 陰이 되니 少陰이 아니겠는가. 水는 땅에서 行하니 陰 中의 陰이니 太陰이 아니겠는가. 火는 땅에 있으니 陰 中의 陽이 되니 少陽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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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大義는 진실로 丹溪가 알지 못하였으므로 日月의 盈虧를 끌어서 陰陽虛實을 증명하였다. 또한 어찌 水가 日보다 큼을 알았으며 오직 陽은 不足하고 陰은 太過함은 생각지 아니하였는가.

客이 가로되 陰陽太少의 說이 진실로 理가 있어 水가 日보다 큼에 이르러 문득 陰의 有餘를 말한다면 무릇 天下의 火가 적지 않는데 어찌 陽이 홀로 日에만 있겠는가. 가로되: 이는 다시 妙理가 있게 된다.》

 

무릇 陰陽의 性이 太한 것은 氣剛하는 故로 日이 가히 消滅하지 않고 水는 가히 枯竭하지 않으니 이는 日이 火의 根本이되고 水는 陰의 根本이 된다. 少한 것은 氣가 柔하여 火가 때로 息하고 月은 때로 缺하니 이는 火는 陽의 나머지요 月은 水의 나머지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 消滅하지 않는 것은 바야흐로 眞火가 되니 때로 일어나고 때로 그치는 것이 어찌 元陽이겠는가. 故로 오직 眞陽의 火는 능히 物을 生하나 燎原의 凡火는 단지 能히 物을 焦하고 物을 病들게 하니 烘炙로써 物을 生함은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이에 어찌 火로써 日에 비유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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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이 가로되 만약 이 말과 같이 水는 진실로 太陰이라면, 어찌 天一生水라 하면서도 水는 陽이 아닌 것인가? 또 어찌 水는 능히 萬物을 生한다고 하면서도 水는 生氣가 아닌 것인가? 가로되 이 문제에는 다시 妙함이 있다. 》

 

무릇 天一이라는 것은 天의 一으로 一은 곧 陽이다. 一이 없는 즉 六에 그치게 될 따름이다. 고로 水의 物을 生하는 것은 이 一에 의존한다. 水의 火氣는 역시 이 一에 의존한다. 春夏의 水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土가 얻어서 능히 生長을 하는 것은 이 일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秋冬의 水는 土가 이를 얻으면 生長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 一이 없어서이지 않은가. 오직 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또한 얼게 되니 이는 물이 죽는 것이다. 水의 生하는 바와 水의 行하는 바를 보면 어찌 陽氣가 主하는 바가 아니리오? 이는 水 中에 陽이 있음이지 水가 곧 陽이 됨은 아니다.

客이 이르기를 그러한즉 生化의 權은 모두 陽氣로 말미암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陽이 有餘하다는 것이 진실로 잘못된 것이 아닌데, 그대가 도리어 그 不足을 생각하니 過한 생각이 아닌가? 가로되 내가 이러한 論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직 사람의 깨닫지 못함을 두려워하는 故로 처음에 形氣를 말하고 다음 寒熱을 말하고 다음 水火를 말하여 모두 陽이 有餘하지 않음을 판별하여 밝히고자 함이니 경솔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陽은 生을 主하고 陰은 殺을 主하나 무릇 陽氣가 충분하지 않으면 즉 生義가 넓혀지지 않으니 하물며 陽이 없으면 어떠하겠는가? 故로 陽은 오직 그 衰를 두려워하고 陰은 오직 그 盛을 두려워하니 陰이 능히 스스로 盛하는 것이 아니고 陽이 衰한즉 陰이 盛하는 것이다. 무릇 萬物의 生은 陽에서 말미암고 萬物의 죽음 역시 陽에서 말미암으니 陽이 능히 物을 死하는 것은 아니라 陽이 온 즉 生하고 陽이 去한즉 死하는 것이다.

太陽으로 시험해보면 가히 그 象을 믿을 수 있다. 무릇 해가 南陸을 行함에 때는 겨울이 된다. 이때에 해(태양)가 없는 것은 아니고 조금 멀리에 있을 따름이다. 문득 嚴寒하고 制御하기 어려움이 이와 같고 萬物이 시들고 떨어짐도 이와 같게 된다. 그러한즉 天地의 조화가 오직 이 해(태양)이고, 萬物을 生하는 것 역시 또한 이 해(태양)이다. 만약 이 해(태양)가 없으면 天地가 비록 클지라도 하나의 차가운 質일 따름이고, 六合이 모두 冰壺(얼음덩어리)이고 乾坤이 모두 지옥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小乾坤이므로 陽은 얻어야 生하고 陽을 잃으면 死한다. 陽이 衰한다는 것은 즉 亡陽이 점점 나아간 것이요 恃强이라는 것은 즉 致衰의 조짐이니 가히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옛날에 伏羲씨는 《易》을 만들어, 첫머리에 一爻를 만들어, 元陽의 祖를 세웠다. 文王이 《易》을 널리 해석하길, 무릇 六十四卦는 모두 陽으로써 君子를 비유하고, 음으로 小人을 비유했는데, 이는 陽氣의 德을 밝힌 것이다. 乾의 彖에 이르길, “크구나 乾元이여, 만물을 베풀어 시작하고 이에 天을 통솔한다” 이 말은 元은 四德을 관통하고, 陽은 發育의 시초가 된다는 말이다. 坤의 첫 六에 이르길,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치게 된다. 이는 陰이 점차 성장할 것을 염려하여 化育을 방해함을 막자는 것이다. 大有의 彖에 이르길, 대유가 元亨하고, 火가 天上에 있다. 이는 陽德의 亨함이 비추지 못한데가 없다는 말이다. 《系辞》에 이르길: 天地의 大德을 일러 生이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生의 근본이다. 《內經》에 이르길: 무릇 陰陽의 요점은 陽은 촘촘하여 단단하다는 것이다. 이는 陰이 믿는 바는 오직 陽이 主가 되는 것을 말한다. 또 말하길: 陽氣는 마치 天에서 日과의 관계와 같으니 그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면 수명을 깎이게 되고 오래 살지 못합니다. 故로 天運은 마땅히 日로써 光明합니다. 이는 天의 運行, 人의 命은 으뜸되는 근본으로 모두 太陽에 존재하고 짝될만한 것이 없다. 무릇 이는 經에서 가르치는 것이니, 대개 伏羲, 皇帝, 文王, 岐伯, 周公, 孔子, 여섯 大聖人 이래로, 오랜동안 서로 전해져, 마치 한입으로 나오니, 어찌 과연 조금의 사사로운 생각이라도 있겠는가? 이로부터 말하면, 가히 天의 大寶가, 다만 이 하나의 둥근 붉은 태양임을 알수 있고, 사람의 大寶는 다만 이 한 호흡의 眞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