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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책정리] 기학(氣學)의 모험 1(상)
이태형 at 2010-06-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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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학(氣學)의 모험 1

김교빈 이정우 이현구 김시천 지음. 들녘. 1987.

(이하는 상기 책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9p 기학이란 무엇인가

 

24p.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氣의 개념.

첫째, 기는 어디든 없는 곳이 없는 존재다

둘째, 모든 사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는 만물의 본질이다.

셋째, 기는 만물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넷째, 기는 느낄 수 있는 대상이다.

다섯째, 기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여섯째, 기의 움직임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곱째, 기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다.

여덟째, 기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지혜 같은 비물질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29p. 기로 설명되는 세계관의 특징.

첫째, 기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틀이며, 분자적 설명과 시스템적 설명을 함께 담고 있는 사유체계다.

둘째, 기는 물질과 비물질, 구체와 추상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개념이다.

셋째, 기는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면서도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32p 기의 개념발생.

○ 갑골문 금문에 나타난 氣자는 아지랑이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의 상형문자로 대자연이 숨쉰다고 보았던 고대인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 左傳에 昭公원년 “天有六氣 ... 六氣曰 陰陽風雨晦明” 고 했다. 그런데 이 여섯 개의 氣중에서 바람과 비는 상대적인 모습이 아니어서 짝이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음양개념이 성립된다. 자연을 여섯 개의 요소로 설명하려던 시도로부터 추상의 단계를 높여감으로써 음양론에 이른 것이다. 또한 촤전에서 다른 한편으로 육기의 변화로 오미 오색 오성까지 설명하려 함으로써 음양오행론의 틀을 만들어 냈다.

○육기를 분명하게 음양으로 재편한 것은 周易과 國語 였다.

國語 에는 당시 발생한 큰 지진에 대한 해석이 실려 있다. 그 당시에는 자연재해는 통치자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보았고 통치자는 큰 재앙이 있을 때 마다 민심을 어루만져야만 했으며 그러기 위해 자연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 있어야 했다. 국어에는 지진을 음양의 부조화에 따른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였고, 이것은 주역으로 넘어가기 전단계에 나타난 추상화 과정이었다.

○ 周易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양을 끊임없이 운동 변화하는 對待關係로 파악했다. 호흡을 비롯해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면 희비 주야 강약 상하 등 모두 상대화 시켜 설명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음양의 구조를 對待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繫辭 上에 "乾陽物也 坤陰物也"  "一陰一陽謂之道" " 陰陽不測謂之神" 이라고 나온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며 점아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주역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모두 변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日月이 변하는 것이며 이는 음양의 변화이다. 이처럼 주역에서는 음양풍우회명의 육기가 분명하게 음양으로 재편되어 있다.

○이 같은 추상화는 道德經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으로 나타난다. 도덕경 42장에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冲氣以爲和" 라 하였는데 이 글의 충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도덕경은 모든 개념을 유무 미추 난이 장단 고하 전후 허실 강약 위무위 등으로 상대화 시켰고 이 상대적인 표현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음양이다.

○ 孔子는 屛氣 食氣 血氣 辭氣 등에서 처럼 기를 유기체의 생리기능 정도로 보았다.

○ 맹자는 浩然之氣를 얘기함으로써 기를 도덕문제로 끌어들였다.

맹자는 자연적이며 생리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던 기를 도덕 개념으로 끌어온 것이다. 이 ‘호연지기’는 나중에 양명학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맹자는 또 “뜻이 한결같으면 기를 움직이고 기가 한결 같으면 뜻을 움직인다. 志壹則動氣 氣壹則動氣也”라고 하여 지와 기를 구분하면서도 다시 ‘志’도 ‘氣’라고 생각하여 ‘志氣’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志氣’가 바로 일반적인 기와 다른 ‘浩然之氣’다. 이 ‘지기’는 도덕적 의지와 관련된 기로써 도덕적 의지가 한결같으면 육체적 욕망과 관계된 기가 따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육체적 욕만이 한결같으면 도덕적 의지가 꺾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도덕적 의지가 있는 사람을 대장부라고 했다.

○ 莊子 지북유편: 사람의 태어남이란 氣가 모인 것이다. 모이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다... 그러므로 ‘천하를 통틀어 하나의 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인은 그런 까닭에 ’하나‘를 귀하게 여긴다.

그 시작을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라는 것이 없었다. 한갓 생명이 없을 뿐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다. 한갓 형체만 없었을 뿐 아니라 기도 없었다. 그 뒤섞여 있는 속에서 변하여 기가 생겨나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있게 되며, 형체가 변해서 목숨이 있게 되었다가 지금 다시 변해서 죽음으로 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의 변화와 무엇이 다르겠는가(지락). 이 같은 장자의 생각은 만물의 변화란 도에 서 기로 기에서 만물이 다시 도로 돌아가는 끝없는 순환임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음과 양 두 氣의 조화를 어떻게 유지할 것 인 가의 문제가 한의학에서 증시하는 養生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 荀子: 유가 사상가이면서도 기를 도덕개념으로서가 아니고 오로지 자연개념으로 이해한 순자는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했다. 자연의 문제를 인간의 도덕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고 자연의 변화를 기의 변화로 보았을 뿐이었다.

○ 管子 기의 개념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함. 추언편: 有氣則生 無氣則死 生者以其氣.

 

44p 陰陽 : 氣 陰陽 五行 이 세 가지 개념은 모두 따로 생겨났지만 시대를 내려오면서 절묘한 결합을 이루었다.

○ 詩經 대아편에 공유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칭송하면서 “백성에게 덕을 잘 베풀고 땅을 길게도 넓게도 만들어 넓혔으며 해의 길이를 재셨고 그리고 나서 양지와 음지를 살폈다”라고 했다. 이 단순한 표현이 나중에 고도의 추상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만물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 周易은 본문과 역전으로 나누어지는데 본문에는 음양이 전혀 나오지 않고 역전 그 중에서도 철학적 설명이 주를 이루는 계사전에 등장한다. 장자에서 “역은 음양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다”라고 주역을 평한 것을 보면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음양이 보편화된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음양은 이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相對的인 두 측면을 추상화한 것으로 동시에 相補的인 모습도 지니고 있다. 멀리뛰기를 할 때 뒤로 젖히는 행위와 앞으로 나가는 행위가 상대적이지만 뒤로 젖힘 속에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다.

46p 五行 (정리자첨가: 左傳 文公七年 “水火金木土穀 謂之六府”인류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물질재료를 개괄.. 육부는 여섯가지 물질을 저장하는 곳.)

○ 書經 홍범구주에 오행은 단순히 다섯 요소가 아니라 기능이나 속성의 의미로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曰稼穡”이라 하여 각각의 기능과 속성을 언급하여 관계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 오행의 출발은 水火木金土星의 별을 관측하는 데서 왔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東西南北中의 다섯 방위개념에서 왔다고도 한다.

史伯은 土與金木水火雜以成百物 국어 정어

 

62p 내경의 두 관점

동양철학은 고대부터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으로 나뉘어져왔다. 앞의 견해는 천인관계를 긍정했던 제(齊)학파의 주장으로, 그 정점에 인간의 도덕적 근원을 하늘에 두었던 맹자가 있다. 그리고 뒤의 견해는 천인관계를 부정했던 노(魯)학파의 주장으로, 그 정점에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부정한 순자가 있다.

그런데 “황제내경”에는 이 두 관점이 다 들어 있다. 특히 제학파의 관점은 한나라에 통일 이념을 제공한 동중서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사람을 하늘의 축소판으로 이해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天人合一’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순자의 관점 또한 매우 중요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순자는 “사람이 반드시 하늘을 이겨야 한다(人定勝天)”고 하여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 존재로 파악하고 특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순자는 하늘을 단순한 자연으로 보았으며 인간과 하늘이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제압해야 한다고 보았다.

치료라는 관점은 이런 입장에서 나왔다. 내경의 치료 개념 속에는 하늘과 사람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동중서의 관점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순자가 천을 이겨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질병을 이기고 고치려는 적극적인 의미가 같이 들어있다.

 

63p 동중서의 관점: 내경은 사람을 만물가운데서 가장 귀한 존재이지만 우주자연의 기를 받아 태어나고 사계절의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사계절과 음양은 만물의 근본이며 삶과 죽음의 근본"이라 하여 자연계의 변화가 인간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계의 오행운동과 인체의 오행구조는 서로 대응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의 기를 받아 태어난다고 보면서도 사람마다 타고난 기가 다를 수 있다고 봄으로써 사람의 유형을 다양하게 나누고 이를 치료에 까지 연결했다.

내경이 동중서의 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天을 목적론이나 신비주의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관찰과 풍부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 사계사지 365일365마디 12경수12경맥 -

내경은 동중서와 마찬가지로 오행과 사계절을 강제로 연결시켰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의 연관을 강조한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비적인 해석을 낳을 소지가 있다. 내경이 천인관계에 주목한 것은 자연의 법칙을 들여와 치료에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자연의 법칙은 사물 사이의 내재적 필연관계이며 내경은 자연계에 대한 관찰과 임상 경험을 통해 이를 객관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없다는 생각에서 내경을 만병통치의 원리라고 보는 신비주의적 믿음까지 낳게 되었다.

 

65p 순자의 관점: 이제 순자의 관점을 보자. 내경이 미신이나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데에는 순자의 영향이 컸다. 순자는 하늘을 단순한 자연으로 보았으며, 인간과 하늘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제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는 인문정신의 극대화였다. 내경은 치료를 위한 책이고 일차적인 치료 대상은 인간이다. 따라서 순자의 관점처럼 다양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사람에게 징험될 수 있을 때에만 참이라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내경에 나오는 하늘은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운동 변화하는 자연과학적 연구 대상일 뿐 인간을 지배하는 주재자가 아니었다. “귀신에 얽매인 사람과는 지극한 덕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표현은 내경이 종교적 미신에서 독립한 과학임을 잘 보여준다.

내경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병의 원인,병리작용病理作用 그리고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다.내경은 풍風 한寒 열熱 습濕 조操 화火 의 여섯 가지 기가 작용해 생기는 병도 하늘이 벌을 주기 위해 고의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을 범하여 스스로 병에 걸린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창이 생기는 것은 농혈이 곪은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니, 은미한 것이 쌓여서 생긴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질병의 발생도 하늘이나 귀신 때문이 아니듯, 질병이 낫는 것 또한 하늘과 상관없이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다만 그 노력이 하늘과 땅의 법칙을 본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침을 찌른 뒤 환자에게 기를 거스르는 현상이 생기는 것은 음양의 기가 떠오르거나 가라앉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침을 잘못 놓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66p 이처럼 한대의 기 사상은 동중서의 대일통이론大一統理論을 통해 음과양과 오행과 기가 하나의 체계로 묶이면서 정교한 이론체계를 이루었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황제내경’의 성과를 통해 과학적 기반을 굳힐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기 개념은 고대부터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내을 채워갔고, 특히 한나라에 이르러 과학적 체계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아시아인의 다양한 삶과 연관되면서 더 복잡한 발전 과정을 거치게 된다.

 

67p 성리학의 배경

68p 성리학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학문 내적인 사상의 변화와 학문 외적인 사회 경제적 변화로 나눌 수 있다.

71p 북송오자: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

 

71p 주돈이: 성리학을 연 첫 번째 인물.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無極이면서 太極인 만물의 본질로 부터 음양 오행을 거쳐 만물이 나오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해설을 붙였다. 주역 계사전의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는 말과 도덕경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는 말을 밑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뒷날 주희는 주돈이를 유학의 도통을 이은 사람으로 떠받들면서도 ‘무극이면서 태극’인 만물의 본질을 기가 아니라 리라고 해석함으로써 태극도설에 담겨있던 노장적 요소를 빼버린다.

주돈이는 태극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단에 이르면 고요해지며 고요해지면 음을 낳는다. 고요함이 극단에 이르면 다시 움직임으로 돌아간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해지는 것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어서 양의兩儀가 성립된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쳐져서 수·화·목·금·토가 생겨난다. 다섯 가지 기운이 순조롭게 펼쳐져 사계절이 전개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무극의 참된 본체와 음양오행의 정수가 합쳐져 덩어리를 이룬다. 하늘의 도는 남자가 되고 땅의 도는 여자가 되니,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이 생겨난다. 만물은 생겨나고 또 생겨나서 그 변화가 끝이 없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而生水火金木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生化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이 글에 나타난 것처럼 주돈이는 태극-음양-오행-만물의 생성 과정을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은 오행을 낳으며 다시 여기서 만물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만물 속에 오행이 들어 있고, 오행 속에 음양이 들어 있으며, 음양 속에 태극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75p 장재: 氣一元論

장재의 철학은 易傳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불교와 노장에 대한 대결의식이 담겨 있다. (知虛空卽氣則無無: 正蒙) 장재는 우주공간 어디 한 구석도 빈 곳이 없이 기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이전의 상태인 太虛가 비록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기의 본 모습이며 그 기의 변화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즉 태허에 담긴 기가 모여 구체적인 사물이 생겨나고 다시 그 사물의 기가 흩어져서 태허로 돌아간다고 본 것이다.

79p 태허에 기가 있고 그 기가 모여 만물이 되며 만물이 다시 흩어져 태허로 돌아간다고 본 장재는 만물이 생겨나 자라고 다시 없어지는 변화 과정을 기의 변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주 만물의 변화는 그 원인이 우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점이 동양적 세계관과 서구적 세계관의 다른 점이다. 서구적 세계관의 대표인 기독교를 보면 세상을 창조한 존재는 신이다. 따라서 신은 세상 밖에 존재하거나 세상을 넘어서서 존재한다. 그 결과 세상 창조의 원인인 신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며 따라서 우주 만물의 변화의 원인이 우주 만물 밖에 있게 된다.

하지만 장재는 이와 달리 만물의 변화는 기의 작용일 뿐이며, 그 변화의 원인이 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기는 처음부터 있었으며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주는 처음부터 영원히 생명으로 가득 찬 기의 율동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장재의 氣一元論적 우주론이다.

80p 장재는 태허-만물-태허의 순환 과정에서 기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작용에 대해 “태허에는 기가 없을 수 없으며, 기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고, 만물은 흩어져 태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을 따라 들고 나는 것은 모두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太虛不能無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 是皆不得已而然也: 정몽”라고 했다. 이 말은 기의 변화에 대해 필연성만 인정한 것이며 바로 이 점이 화담 서경덕의 철학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뒷날 주희의 이기론에 통합되면서 리 우위의 철학에 종속되고 만다.

 

81p 정호

하늘을 리라고 이해함으로써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을 하나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주자연의 이치를 반드시 음양을 통해 이해하려 했고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이법과 그것을 담는 현실을 하나로 보았다. 이러한 일원적 사고관점은 양명학으로 이어졌다.

81p 정이: 理 중심의 철학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중국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주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82p 정이는 음양으로 드러나는 氣의 현상 뒤에서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법칙이 理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양운동을 하게하는 道와 직접 운동하는 陰陽으로 구분했고 도가 형체 없는 형이상적적 존재인 반면 음양은 형체를 갖춘 형이하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은 도인 理와 음양인 氣를 차등적 존재로 보았다.

정이는 우주만물이 리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만물 속에는 리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물론 만물은 또한 기를 받아 태어났으며 음양의 운동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만물의 동질성을 보증하는 것은 리이며 기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만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기와 분리시킨 리의 본모습과 현실에서 기 속에 담겨 있는 리의 모습은 같은 점이 있으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 속에 담겨 있는 리는 개별 사물의 법칙에 불과한 ‘분수지리分殊之理’이며, 기와 분리시킨 리는 모든 이치의 근원이 되는 ‘리일지리理一之理’라고 했다.

이 두가지 리의 관계는 불교의 ‘월인만천月印萬川’ 논법을 끌어온 것이다. ‘월인만천’이란 하늘에 뜬 달이 온갖 강물에 비추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달은 기와 분리시킨 순수한 리이며 물 속에 비친 수없이 많은 달은 기 속에 들어 있는 현실의 리에 해당한다.

리를 중심으로 한 정이의 철학은 ‘인간의 본성이 곧 리이다(性卽理)’라는 명제에 잘 드러나 있다. ‘성리학’이란 ‘성즉리性卽理’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한 성은 하늘이 부여한 타고난 본성으로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했던 그 성이다. 하지만 이 성은 기가 아니라 리인 것이다. 물론 현실의 인간이 지닌 본성은 이미 기 속에 들어 있는 본성이다. 그래서 ‘성즉리’의 성과 구분하여 ‘기질의 성(氣質之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는 악한 행동은 그 원인이 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기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물을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기는 리가 영원불변하는 것과 달리 사물이 없어지면 함께 없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기를 리보다 낮추어 보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83p 주희:

북송 성리학을 집대성. 그의 학문은 북송에서 시작된 성리학 뿐만 아니라 한당의 경학과 노장철학 불교 그리고 문학과 사학에다 당시 수준의 자연과학의 성과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다. 大學 中庸을 禮記에서 끌어내어 이전까지의 五經중심의 학문 틀을 四書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83p 주희의 성리학은 인간중심의 사유체계이어서 존재문제를 다루는 이기론에도 도덕적 색채가 깔려있다. 장재의 氣哲學과 정이의 理哲學을 모두 받아들였으면서도 理一元論의 철학으로 완성했다. 그래서 모든 사물이 리와 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현상을 말할 때도 理氣不相離라 했고 理氣不相雜이라 하였다. 그리고 리와 기가 서로 먼저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리가 먼저라고 한다. 따라서 설명과정에서는 이기이원론적 방법을 취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존재를 기로 보기 때문에 리 일원론이 되는 것이며 기는 리에 종속되는 하위개념이 된다.

84p 성리학에서 리는 불변의 존재이며 절대선이다. 하지만 기는 움직이는 존재이고 상대적이며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기 생기는 원인 또한 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본래 사물의 존재 문제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이기 개념을 도덕 문제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개념으로 끌어들이는 논리가 된다.

이 무형의 리가 유형의 기를 낳고 존재하게 하며, 또 운동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는 생겼다가 없어지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리는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영원한 존재라고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주희는 기가 모습을 드러내는 유형의 사물 세계는 참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일시적인 세계라고 이해했다. 주희에게 참 존재의 세계는 리의 세계뿐이며 따라서 인간도 자신의 본성에 들어 있는 리를 잘 발휘하여 참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일은 곧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85p 이 같은 인간 이해는 본연지성本然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의 구분으로 나타난다. ‘본연지성’이란 인간의 순수한 본모습으로서 리만 있는 상태며, 기질지성은 그 본모습이 기에 둘러싸인 현실적 인간의 모습이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성즉리’의 성은 본연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본연지성은 항상 선이지만 기질지성 때문에 나쁜 행동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주희의 관심은 도덕 행위의 주체인 인간이 어떻게 악을 누르고 본래의 선한 모습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이 같은 논리는 앞에서 본 것처럼 가치문제와 상관없이 있음과 없음만을 설명하는 이기론을 도덕 문제로 끌어들인 것이며, 그 결과 악의 원인 또한 기에 두게 된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그 본성이 담겨 있는 마음도 인심과 도심이라는 두 가지 양태로 나누었다. 인심과 도심은 『서경』에서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그 가운데 인심은 감각적 욕망에 물든 욕심 섞인 마음이고 도심은 리에 근원한 순수한 마음이다. 주희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도심이 마음의 주재자가 되어 인심이 도심의 명령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처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도심과 인심으로 나눈 까닭은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가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해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기(存天理去人欲)’ 위해서였다. 물론 주희가 기나, 기에 둘러싸인 기질지성, 감각에 기반한 인심 등을 악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으로 흐를 경향이 높다고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부정해야 할 대상을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수양론에 잘 나타나 있다. 주희는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 자연의 법칙과 하나가 되는 성인을 목표로 삼았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마음공부인 경공부敬工夫와 사물공부인 격물치지공부格物致知工夫였으며, 이 둘을 합쳐 거경궁리居敬窮理라고 한다. ‘거경’은 마음이 항상 ‘정돈되고 엄숙하며’ ‘한 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다. ‘거경’을 이루기 위하여 주희는 늘 두려워하듯 조심하고 ‘항상 깨어 있을 것(常惺惺)’을 강조했다. 이것은 늘 도덕적 긴장감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사사로운 욕심에 얽매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공부인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에 나아가(格物)’ ‘앎을 완성한다(致知)’는 뜻이다. 이 말만 보면 앎의 대상이 사물인 것 같지만 궁극적인 탐구대상은 그 사물 속에 들어 있는 리理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궁리格物窮理’라고도 하는 것이다. 주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천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탐구해가다 보면 마침내 하루아침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물의 겉과 속, 정미한 사물과 거친 사물 할 것 없이 사물의 이치를 다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내 마음의 온전한 본모습과 그 마음의 활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돌의 이치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모습과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다. 개의 이치는 어떤 것일까? 개의 이치를 따지는 일은 어떤 개가 가장 좋은 개인지 찾는 일과 같다. 가장 좋은 개는 주인을 잘 따르고 집 잘 지키는 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가 좋은 개라는 사실은 우리 집 개만이 아니라 옆집 개, 뒷집 개, 미국 사는 개까지도 모두 해당되는 것이며, 이미 죽은 개나 앞으로 태어날 개에게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보다 이치가 먼저라고 하는 것이다. 좋은 고양이는 어떤 고양이일까? 그 또한 쥐 잘 잡고 주인 잘 따르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일 것이며 이 이치도 이미 죽은 고양이나 앞으로 태어날 고양이에게까지 해당하는 법칙이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목재로 쓰기도 좋으면서 예쁜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나무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와 고양이와 나무의 이치는 다르지만 좋은 나무, 좋은 고양이, 좋은 개로 생각을 넓히면 그 이치는 모두 같아진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이치는 결국 선의 이치라는 점에서 같다는 결론이 나오며, 이러한 이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이치를 따지는 문제는 모두 사람 중심의 논리다. 하지만 인간 중심주의인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따라서 깨달은 궁극의 진리는 내 속에 들어 있는 사람다움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주희가 제시한 ‘거경’과 ‘궁리’는 사실 두 갈래 길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에 이르기 위한 다른 방법일 뿐이었다. 그 길의 최종 목표는 천하 만물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이치였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인간의 순수한 본 모습으로서 리만 있는 本然之性과 본 모습이 기에 둘러싸인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인 氣質之性으로 나누어 보았고, 본연지성은 항상 선이지만 기질지성 때문에 나쁜 행동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담겨있는 마음도 감각적 욕망에 물든 욕심 섞인 마음인 人心과 리에 근원한 순수한 마음인 道心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성과 심을 나눈것은 存天理去人欲 하기 위해서였다. 기질지성과 인심이 악이라 규정한 것은 아니나 그럴 경향이 높다고 보았다.

89p 우리나라의 성리학

89p 원나라 지배를 받던 고려 말, 안향이 중국에서 성리학을 들여왔다. 그 뒤를 이어 많은 학자들이 원나라의 만권당에 유학하여 성리학을 배웠고 이들을 중심으로 고려의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에 대한 배척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성리학자들은 훈구파와 사림파로 갈라지게 된다. 여러 시련 속에서 한국 성리학의 주춧돌을 놓은 대표적인 인물이 리를 강조한 회재 이언적과 기를 강조한 화담 서경덕이었다.

 

91p 서경덕

서경덕은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예의 도덕 중심의 가치론에 관심을 둔 것과는 달리 자연의 이치를 따지는 존재론에 관심을 두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서경덕은 성리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였다. ‘성즉리’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의 글 가운데는 성즉리라는 표현이 거의 없으며 성이 도덕성이었던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性이 자연 사물의 존재법칙이었다.

93p 서경덕은 만물이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공간도 빈틈없이 기로 꽉 차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는 그 속성상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把之則虛 執之則無 然而却實 不得謂之無 :原理氣’ 기란 이처럼 감각할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 존재인 것이다.

서경덕은 이 같은 상태를 우주만물의 가장 본질적인 상태로 보았으며 태허라 불렀다. 태허라는 용어는 장자가 처음 사용하였는데 고저 생사 등의 현상 세계의 상대성을 넘어선 경지로 장재가 철학용어로 되살려 내었다.

태허란 우리가 사는 현실 새계의 다양한 사물과 현상들이 나오는 근본자리로서 빈 듯하면서도 비어 있지 않은 공간이며 그 빈 듯해 보이는 것은 바로 기다. (太虛 虛而不虛 虛卽氣 : 太虛說)

97p 서경덕은 세상 모든 것이 한 순간도 멈춤 없이 변하는 과정에 있으며 그러한 변화의 원인은 기의 변화라고 보았다. 사실 종달새의 날갯짓이나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 물질적 변화부터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내는 감정의 변화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변화까지 이 세상 어느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서경덕은 이 같은 변화를 모두 기의 변화라고 보았다.

98p 서경덕은 기가 생겨났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며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태허 속에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텅 빈 것처럼 존재하다가 문득 모여서 구체적인 사물을 이루고 언젠가 흩어져 다시 태허로 돌아갈 뿐이다. 이 같은 서경덕의 생각은 성리학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성리학자들은 리가 기보다 높은 개념이며 리는 절대 불변이고 처음부터 그대로 있을 뿐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는 리 때문에 생겨나며 한 번 생겨난 기는 변화 과정에서 점점 엷어져서 마침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경덕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기였기에 일반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리는 기 안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였다. (氣外無理 :理氣說) 또한 리기의 선후에 있어서 성리학자들이 리를 앞세운 것과는 달리 리가 기를 앞설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서경덕은 기가 시작 없이 처음부터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리 또한 시작이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며, 만약 리가 기보다 앞선다고 한다면 이것은 기에 시작이 있다는 논리가 된다고 했다. (理不先於氣 氣無始 理固無始 若曰理先於氣則 是氣有始也 : 理氣說)

98p 리와 기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태허 속에 기가 본래 텅 빈 듯한 상태로 있을 때에는 리가 논의되지 않는다. 기가 구체적인 사물로 드러난 현실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 의미 또한 기의 변화에 담겨 있는 합리적인 궤적, 즉 법칙에 불과하다. (理者氣之宰也 所謂宰非自外來而宰之 指其氣之用事 能不失其所以然之正者而謂之宰 : 理氣說)

98p 기의 불멸에 대한 서경덕의 생각은 촛불에 대한 설명에서 잘 나타난다. 초에 불을 붙였다가 끄면 역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나며 얼마 지나면 연기와 냄새가 모두 없어진다. 하지만 서경덕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점점 엷어져서 기의 본래 상태인 태허로 돌아간 것이라고 본다. 서경덕의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초와 심지 또한 모두 기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초의 기와 심지의 기가 불의 기로 바뀌면서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가 촛불을 끄면 이번에는 불의 기가 냄새와 연기의 기로 바뀌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 엷어지면 태허에 있던 본래 상태의 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같은 서경덕의 생각은 모습은 바뀌어도 전체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질량불변의 법칙을 보는 듯하다.

99p 또한 기와 태허에 대해서 “無外曰太虛 無始者曰氣 : 理氣說”고 했다. 이 글을 보면 밖이 없다는 것은 공간 개념이며 시작이 없다는 것은 시간 개념이 된다. 물론 두 가지 다 밖이 없고 시작이 없다는 점에서 초월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태허는 시간 개념을 초월한 제한 없는 공간으로서의 場을 의미하며, 기는 태허의 빈 듯한 양태이면서 그 속에 구체적인 제한된 시간을 넘어선 초월 시간 개념을 담고 있는 존재가 된다. 앞서 보았듯이 기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존재라는 것은 바로 시간을 초월해 있다는 말이다.

99p 기는 이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물, 햇빛, 바람, 흙의 기들이 모여 곡식도 되고 풀도 된다. 다시 풀의 기는 그것을 뜯어먹는 소의 기가 되었다가 그 소를 잡아먹은 사람의 기가 된다. 사람은 살면서 생각과 운동과 공부를 통해 기를 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기가 일의 성과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죽고 나면 내 몸을 이루던 기가 흙으로 돌아가 꽃을 피우기도 하고 썩어 나온 물이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기도 하며, 나를 뜯어먹은 벌레의 기가 되기도 한다. 서경덕은 이처럼 기의 순환은 끝이 없으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기가 모이면 사람이나 나무나 생각이 되고 흩어지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기로 돌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