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아랫배가 차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들은 아랫배에 손을 얹어 보고 배꼽 주변이 다른 부위에 비해 차갑게 느껴진다면 아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예전에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등이 시리다.’, ‘무릎에 바람이 든다.’, ‘배가 차다.’라고 하셨는데 요즈음에는 젊은 사람들 중에도 ‘손발이 차요.’, ‘발이 시려요.’, ‘배가 냉해요.’라고 하소연 하는 분들이 많다.

 

배꼽아래의 단전에는 항상 양기(陽氣)가 가득해야 몸통은 물론 신체 말단부위까지 기혈 순환이 잘되어서 우리 몸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배가 차다는 것은 우리 몸 속 양기의 근원인 단전에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의미이다. 아랫배의 단전에서 신체 각 부위까지 기운을 순환시켜야할 양기가 거꾸로 치솟아 역상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열이 위로 뜨기 때문에 배가 차고 하체가 시린 증상이 나타난다.

 

신기하게도 배가 차다는 사람도 체온을 재보면 정상일 경우가 많다. 배는 차가운데 체온계로는 오히려 열이 있을 때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우리가 체온을 재는 것은 겨드랑이나, 귀, 항문을 이용하여 몸속의 온도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온 몸이 한 덩어리로 열전달이 잘되고 있을 때는 이렇게 재어도 문제가 없지만 건강에 균형이 깨어지면 국소부위의 체온으로 신체 각 부분을 모두 적용하기는 무리이다. 얼굴은 달아오르고 가슴이 답답해 죽겠는데 배는 얼음같이 차기도 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서 자고 있는데도 다리는 여전히 시려서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이와 같이 체온과 상관없이 배가 차다는 것은 기운의 순환이 전체적으로 원활하지 못하면 국소적 순환장애로 일정 부위가 차게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기운 순환이 몸의 최하부인 발바닥까지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 몸 어디에도 차갑거나 시린 느낌이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김길상 동심 *10P(53cm x 41cm) Oil on canvas

 

이렇게 배가 찬 원인은 식사가 불규칙적이어서 위와 장이 약해지거나, 자연유산이나 소파수술을 자주 하여 자궁이 약해진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배가 냉해질 수 있다. 술도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 반복되면-불이 타면 화기(火氣)가 위로만 오르고 아래는 재만 남듯이-양기가 떨어진다.(이래서 애주가중 정력가가 없다는 우스갯말도 생긴 듯)

 

또한 고민이 많은 부인, 짜증이 많은 남자, 생각이 많은 학생, 우울한 아이들, 초조한 아버지, 불만 많은 어머니들도 역시 배가 차다. 다시 말해 위, 장, 자궁 이외에도 우리의 감정상태도 이런 균형을 잘 깨뜨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긴장, 초조불안, 짜증은 열이 위로 뜨게 하고 이 때 아래가 차가워진다. 생각과 걱정은 위장활동을 억압하여 윗배를 차게 한다. 실망, 낙심, 공포 역시 장기적으로 아랫배를 차갑게 한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 기운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니 기운순환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양기가 회복되어야만 신체 각 부위가 제 기능을 잘 할 것이다. 잘못된 생활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이니 치료법 또한 바른 생활이 가장 기본일 것이다. 즉 계절과 체질에 맞는 식사와 원활한 노폐물 배설, 적절한 운동과 안정된 심리상태, 적절한 휴식과 수면이 중요하다. 바른생활로도 회복되지 않을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배가 차갑다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여 예전부터 배를 따뜻하게 하는 사인, 초두구, 백두구, 계피, 계지, 건강, 소회향, 부자 등을 활용하여 치료해오고 있다. 침구치료에 있어서 아랫배 부위의 뜸 치료나 장부의 기능을 조절하여 기운을 순환시켜주는 사암침법이나 체질침법도 효과가 탁월하다.


 

2011.04.24.

이태형한의원장 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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