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침(針)- 막힌 곳은 뚫고, 얽힌 곳은 풀고

진료를 할 때 또는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심심치 않게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같은 질환인데도 한의원마다 침을 놓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병에는 한 가지 치료법만 있을 것이라는 환자 분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으로, 침의 원리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러한 의문점은 쉽게 해소될 것이다.

 

한의학의 원전 의서인 황제내경에서는 침으로 “通其經脈, 調其血氣”한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자면 기혈이 흐르는 통로인 경맥과 락맥(경락)의 순환을 원활히 해서 병을 치료한다는 의미이다. 세간에서 일컫는 ‘순환이 안 된다’는 표현이 정확한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그 말 속에는 이러한 뜻이 내포되어있다.

 

인체에는 氣와 血이 흘러가는 무수한 도로가 존재하는데 이를 한의학에서 ‘경락’이라고 한다. 이 경락에는 12경맥, 기경8맥, 15락맥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존재하고 모든 종류의 경락은 서로 복잡하게 연계되어 교류하고 있다. 이를 도로에 비유하자면 고속도로, 지방도로, 간선도로 등 여러 도로가 존재하지만 결국은 서로 다 통하게 되어있는 것과 같다.

 

한의사들 마다 침 치료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서 기인하는데 첫째는 인체의 도로격인 경락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체질과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침으로 질병을 치료할 때는 한의사가 원하는 곳의 기혈 순환을 증대시키기도 하고 혹은 감소시키기도 하며 경락이 막힌 곳을 뚫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막히게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심한 스트레스로 간의 기혈이 막혀 있을 때 침을 통해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간과 관련된 경락을 조절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직접적으로 족궐음간경(간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경락)에 침을 놓아 치료할 수도 있지만 이 경락이 심하게 막혀 있으면 그와 연결된 다른 경락을 자극해 간접적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서울에서 운전을 하여 이동할 때 동부간선도로나 강변북로 같은 메인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막히는 시간대에는 그 옆의 도로나 샛길을 이용하는 것이 더 시간을 단축시켜 도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차가 막히지 않더라도 똑같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이동할 때 모든 운전자들이 같은 길로 가지 않는데 이는 운전자의 평소 습관이나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등산을 할 때도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빠르지만 힘든 길도 있고 시간이 걸리지만 완만한 길도 있듯이 치료에 있어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의사들도 침을 놓을 때 자신의 관점이나 성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동일하게 견관절에 통증이 생겨 온 두 명의 환자들의 경우에도 침을 다르게 놓을 수가 있는데 이는 같은 병이라도 환자의 체질과 기운이 달라서이다.(同病異治) 비유하자면 자동차와 같이 덩치도 크고 기운도 센 사람들은 고속도로와 같은 경락을 이용하여 치료할 수 있지만 오토바이와 같이 덩치도 작고 자동차에 비해 기운도 약한 사람이라면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상으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어느 한 가지 치료법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각각의 치료가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이를 선택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기 때문에 환자 분들께서 이러한 점들을 진료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침에 관한 오해 중 한 가지를 더 얘기하자면, 보통 근골격계의 통증만을 침치료의 범위라고 알고 있지만 과거의 침구학 서적들을 살펴보면 침은 인체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증상에 다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피부병에도 침을 이용했고 복통설사에도 침을 놓았으며 기침 가래와 같은 감기 증상에도 침을 이용했다.

 

최근까지 우리 한의사들의 홍보 부족과 환자분들의 오해로 침은 통증질환에만 이용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 한의사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침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이자 위대한 의학기술이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서구권에서는 침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각광받고 있으니, 우리의 전통 침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져 세계로 진출하기를 소망해본다.

 

2009.03.22.

이태형한의원장 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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